어느 비오는 여름날 오후, 파리의 도심에서 두 남녀가 만난다.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뤽상부르 공원으로 향한 남녀는 강한 욕망을 드러내며 키스를 하고, 곧장 근처 호텔로 들어간다. 이후 소설은 끝까지 두 남녀의 정사 장면만을 보여준다. 중간에 잠시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대목을 제외하고는.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두 남녀밖에 등장하지 않으며, 사건의 서술보다는 두 남녀의 심리와 호텔방에서 벌어지는 상황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두 남녀가 어떻게 헤어지게 됐으며,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의 기본적인 정보도 두 남녀의 정사 장면 간간이 불쑥불쑥 두서없이 튀어나올 뿐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스토리 구조를 파악하려면 퍼즐 맞추기 같은 작업이 필요하다. 단절의 시대, 의사소통 부제의 시대에 말없는 육체의 마주침과 성행위를 매개로 용서와 사랑과 화해에 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절규가 절제의 문장과 세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이루어진다.